2.2 정순보의 삶과 철학 

 “그가 황주농업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농사일이 천직이 될 줄은 몰랐다고 회고한다. 당시 꿈은 <목사><교사><음악가>셋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돈 버는 일이 아닌 <봉사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도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끼며 하는 일로써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늘 함께 하는 일이란 그에게 농사짓는 일로 다가왔다. 하나님을 환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조그만 풀잎하나 풀벌레 소리 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교회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열 두 자녀, 자부, 손자까지도 모두 교회를 나가도 그만 나가지 않는다. 그가 젊어서부터 해온 퀘이커 신앙을 그대로 지켜나가고 싶어 한다. 교회적인 형식 없이 하나님을 내적인 빛으로 받아들여 생을 헌신한다는 특징의 퀘이커 교는 그의 일상을 통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내면적인 빛>에 대한 개방이 다른 이들의 <고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고난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을 취하라는 양심의 명령에 그를 동참시키게 하였다. 작고한 함석헌 옹과의 만남과 교류는 더욱 그의 신앙을 다져주었고 신비한 친교의 만남은 그에게 자연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하였다.”

심정기 기자,『주간 기독교』, 1990.10.14

2.3. 정순보 충남 서천에 정착해 나상애와 결혼, 아리랑농장 개원

황해도 황주 출생이자 품종가인 그는 품종 개량에 적합한 서천으로 이남하여 나상애씨를 만났고, 합전마을에 자리를 잡아 아리랑 육종농장을 시작했습니다..


  “맨 주먹으로 가족을 이끌고 남하의 길을 떠나 육종의 적지로 찾은 곳이 서천 땅이었다. 그는 이곳이야말로 그가 못내 꿈꾸어 온 그의 일터라고 믿었다. 맨 주먹으로 약간의 땅을 얻어 땀으로 대결했다. 농사를 짓되 그는 연구하는 농민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뚜렷했다. 먼저 씨앗을 우량종으로 길러내어 남의 것보다 좋은 농산물을 가꾸어야 한다고. 배추와 무씨 참외씨 그리고 「튜ㄹ립」, 수박 씨 등 그는 자기 자식 기르듯 온갖 정성을 들여 가꿨다. 구하기 힘든 외국서적을 이리저리 얻어 읽어가며 “좀 더 나은 것”을 생산해내기 위해 힘을 기울여 씨앗을 길러왔다. 땀의 열매는 맺어졌다. 그의 부근 과 멀리 여러 곳에서까지 그의 육종장에서 씨앗을 사가기 시작했다. 그는 씨앗을 파는 대로 돈이 들어오면 몽땅 땅을 사들였다. 이렇게 하여 그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임야와 모래밭은 그 10여만 평이 넘는다고 한다.”

… (중략) … 

 “그는 또한 참된 일꾼을 기르기 위해 「덴마크」의 본을 뜬 「농민학교」를 꼭 세우겠다고 한다. 그가 사들인 넓은 땅도 이 학교를 세우기 위한 터전이다. 창백한 중농주의자보다 흙의 아들이 된 정씨에게서는 숭고한 그 무엇이 풍기는 듯 했다.

 여름철만 되면 그의 농장엔 몇몇의 뜻있는 농학도들이 찾아와서 함께 일하며 배우고 있다. 이들과 함께 그는 꼭 이 땅에 그의 이상을 뿌리 깊게 심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덴마크」의 「그룬트비」를 존경한다는 그의 이상이 이 땅에 피어날 날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Y)”

“씨앗을 기르는 마음 육종을 천직으로 삼은 정씨”, 『경향신문』, 1963.01.19. 기사(뉴스)

故함석헌과 교류하하며 농사의 철학을 넓혀가다 왼쪽부터 정의국, 故 나상애, 故 함석헌, 故 정순보 (1970년대)
故함석헌과 교류하하며 농사의 철학을 넓혀가다 왼쪽부터 정의국, 故 나상애, 故 함석헌, 故 정순보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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